한국 난민 된 미얀마 탈영 군인, “미얀마 시민혁명은 현재 진행 중”

时间:2024-03-29 03:39:27출처:pci express 슬롯 호환작성자:패션

한국 난민 된 미얀마 탈영 군인, “미얀마 시민혁명은 현재 진행 중”

미얀마 민주화 항쟁이 3년을 맞았다. 쿠데타에 저항하기 위해 군을 나온 린 텟 아웅 대위는 미얀마의 시민 저항이 한 번도 멈춘 적 없다고 말한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린 텟 아웅 대위는 미얀마 시민방위군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양손이 가벼웠다. 무기와 짐은 내버려두었다. 2021년 3월14일 오전 10시, 린 텟 아웅 대위(당시 29세)는 조용히 군부대를 빠져나왔다. 중국, 타이와 국경을 맞댄 미얀마 북동부 샨주에 위치한 최전방 부대였다. 탈영 사실이 발각되면 최악의 경우 그 자리에서 사살될 수도 있다. 가까운 정글로 숨어든 린 텟 아웅 대위는 며칠을 홀로 헤맸다. 사흘 동안 물 이외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해방 구역’이라 불리는 타이 국경지대에 발을 디딘 건 14일째 되던 날. 무모하다는 걸 알았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권력에 이용당하는 군인 말고, 국민의 편에 서는 군인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린 텟 아웅 대위의 시민불복종운동(CDM)이 어느덧 3년이 되었다.

그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탈영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국내외에 처음 알린 인물이다. 같은 해 4월 탈영병으로서는 처음으로 ‘RFA 자유아시아방송’과 언론 인터뷰를 했다. “다른 군인들도 용기를 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고,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2월1일 쿠데타 직후부터 치밀하게 계획한 일이었다. 반쿠데타 세력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정치인을 체포하라는 명령에 “몸이 아프다”라며 연기를 하거나 주어진 임무를 “의도적으로” 피했다. 기사가 나가고서야 아버지와 형도 그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가족이 군부로부터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몰라 린 텟 아웅 대위는 지금까지도 가족과 연락을 하지 않는다.

1992년생인 그는 스스로를 “미얀마 군사정권 시기에 태어난 세대”라고 소개한다. 1988년 쿠데타를 일으킨 탄 슈웨 장군은 1992년부터 19년간 미얀마를 독재 치하에 두었다. 지금처럼 SNS로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군사정권이 만들어놓은 프레임 안에서 자랐다. 아무도 그 프레임에 반기를 들기 쉽지 않았다.” 2007년 승려들의 반정부 시위인 사프란 혁명 이후 2008년 군에 입대한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열여섯 살이던 당시, 미얀마 국경을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군인이 되었으나 13년 만에 목도한 현실은 기대와 전혀 달랐다. 린 텟 아웅 대위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나왔다.

미얀마 쿠데타에 저항하는 민주화 항쟁이 3년을 맞았다. 그간 군부에 저항한 시민들의 목소리는 전해졌지만 군인과 경찰의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의 자료를 보면, 올해 1월31일까지 군부에 의해 4474명이 목숨을 잃고 2만5931명이 체포되었다. 또 미얀마 군이 무차별 공습과 포격에 나서면서 피난민 260만명 이상이 발생했다. 자국민을 향해 총탄을 겨누는 미얀마의 공권력을 두고 ‘21세기라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라는 국제적 비난이 쏟아졌다. 정작 미얀마 군부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2월1일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테러리스트들이 국가 평화와 안정을 악화시키고 있다”라며 국가비상사태를 오는 7월31일까지 연장했다.

한때 미얀마 군의 일원이었던 린 텟 아웅 대위는 군부의 ‘비뚤어진’ 생각을 이렇게 설명한다. “시민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인식을 군인이 되는 순간부터 세뇌받는다.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부터 가장 아래 계급 병사까지 그렇다. 군복만 입으면 시민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서 새치기든 뇌물이든 당연하게 여긴다.” 그에 따르면 시민들이 항쟁하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드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보란 듯 폭력을 쓰는 일이 그들에겐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린 텟 아웅 대위는 미얀마 군부 내에서 ‘시민 반란은 NLD 세력이 부추기는 거다’ ‘이슬람교에 맞서 불교를 지켜야 한다’ 같은 프레임이 일반 병사들에게 끊임없이 주입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것은 미움을 심는 일이었다.”

군부 쿠데타가 발발하자 린 텟 아웅 대위는 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탈영했다. ©린 텟 아웅 제공

“미얀마 군, 내부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탈영을 결심한 후, 시민방위군(PDF)이 되어 무장투쟁에 나설까 생각하기도 했다. 얼굴이 알려져 미얀마에선 목숨이 위험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과 같은 탈영병을 돕고 싶었다. 2021년 6월 타이에 머물며 ‘국민의 품(People's Embrace)’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다. 군인과 경찰이 시민불복종운동을 하는 것은 그들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현재 팔로어 15만명인 이 페이지에는 ‘군대, 경찰 CDM 하실 분 안전하게 연락하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나와 있다. 린 텟 아웅 대위는 SNS를 통해 탈영병이 ‘해방 구역’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빈손으로 탈출한 이들이 생활할 수 있게끔 자금을 마련 중이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의 탈영은 가속화되고 있다. 미얀마 민주 진영의 임시정부인 민족통합정부(NUG)에 따르면 2023년 8월 기준 군인 6000여 명, 경찰 8000여 명이 탈영했다. 이 중 ‘국민의 품’에 연락을 취해온 이들도 2000명이 넘는다고 린 텟 아웅 대위는 말했다. 주로 두 가지 경우다. 탈영을 통해 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군인과, 군대 내에 있으면서 정보를 넘겨주겠다는 군인이다. 이 정보원을 미얀마에서는 ‘수박’이라고 부른다. 겉은 군복을 뜻하는 녹색이지만 속은 NLD의 혁명을 뜻하는 빨간색이어서다. 그는 “모두 미얀마 군이 내부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7월 한국행을 선택했다. 타이에서 숨어 지내며 활동하는 데 한계가 많아서다.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행도 고려했지만 미얀마와 시차가 컸다. 밤낮이 달라지면 탈영 군인들을 돕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아시아 국가 중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가 한국이라고 판단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날 공항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 “(피신이) 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봄의 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싸우고 싶었다. 한국은 다른 어떤 국가보다 미얀마 항쟁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활발한 곳이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미얀마인들의 열정도 남달랐다.” 난민신청자에게 주어지는 기타(G-1) 체류자격을 받은 린 텟 아웅 대위는 현재 NUG 한국 지부와 함께 미얀마 시민방위군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1월31일 그가 입고 온 후드티 뒷면에는 한글로 ‘혁명은 승리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최근 ‘1027 작전’의 향방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0월27일 샨주에서 시작된 소수민족 무장단체의 총공세로 NUG의 반군부 무장투쟁이 유리한 국면으로 바뀌었다. 미얀마 군정이 쿠데타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는 관측도 뒤따른다. “정부군 장교와 병사 400여 명이 항복했다고 한다. 군인들의 사기도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 미얀마의 시민혁명에 지금 막 가속도가 붙었다.” 그의 바람처럼, 미얀마 사태가 3년 만에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을까.

그의 답변 중엔 ‘과거와는 다르다’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NLD를 중심으로 하는 미얀마 민주 진영은 오랫동안 버마족 중심주의로 소수민족을 탄압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17년 미얀마 군의 로힝야 학살에 침묵·동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소수민족과의 연대는 미얀마 민주주의의 큰 난제로 남았다. 린 텟 아웅 대위는 민주 진영의 임시정부인 NUG가 과거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고, ‘1027 작전’은 하나의 성과라고 본다. “NUG는 소수민족 출신 장관을 임명하고 내부 감시 시스템도 구축했다. 이뿐 아니라 남성 우월주의를 근절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소수민족이든 여성이든 미얀마에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존엄한 인권을 가진다. 미얀마 항쟁은 인권과 평등을 위한 싸움이 되었다.”

미얀마에서부터 한국에 오기까지 지난 3년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미얀마에 남겨진 지인들이 고문당하고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괴감에 시달렸다. 국제사회의 관심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때마다 린 텟 아웅 대위를 일으킨 건, “과거에는 없었던 시민들의 단결과 끈질김”이다. “미얀마에서 민주주의는 2021년 2월1일을 기점으로 실종되었다. 이동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없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은 정글 속으로 들어가서 무기를 들고 군부에 맞서고 있다. 우리의 싸움은 3년 내내 한 번도 힘이 빠지지 않았다. 미얀마의 시민저항은 현재 진행 중이고,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그는 미얀마를 잊지 말아달라며 〈시사IN〉 카메라 앞에서 세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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